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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REVIEW
김경애 작품 ; 순결성과 가능성 글, 김재관 / 쉐마미술관장, 미술학박사 작가 김경애는 청주에서 활동하는 작가로는 창작 의욕과 활동의 폭이 가장 높은 몇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가 개인전을 가진지 불과 1년도 채 안 되어 다시 개인전을 갖는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작품 제작에 열정을 쏟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필자는 5년 전 그의 개인전(청주, 숲속 갤러리) 서평에서 그의 작품의 특징을 이렇게 정의하였다. 첫째 ; 오토마티즘 기법으로서의 드로잉. 둘째 ; 무의식 세계의 불확실한 이미지의 흔적을 포착하는 젠탱글(Zentangle) 기법. 셋째 ; 오브제와 드로잉을 결합시키는 꼴라주 기법. 그리고 이러한 그의 표현 방법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드로잉’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였다. 그는 한동안 드로잉에 심취하여 몇 차례 드로잉 전을 열었다. 그가 드로잉에서 소재로 다룬 ‘이미지들’-여인의 Nude, 각종 동·식물, 씨앗과 눈(目)- 은 생명 탄생의 신화를 느끼게 하는 초현실적 세계이자 추상적 세계에서 기인하였다고 생각한다. 작가 김경애는 자신의 초현실 세계는 라캉에 의해 정신분석학의 핵심용어로 부각된 ‘욕망(欲望)’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하였다고 말한다. 또한, 태초부터 인간이 존재할 수 있었던 힘, 삶의 원동력, 성장과 발전의 근원, 흥망성쇠의 모두가 이 욕망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의 최근 작품은 이미지(드로잉)에서 다시 물(物, 입체구조)로 회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본래 대학 시절에 조각을 전공했던 그가 드로잉의 매력에 빠져 선묘에 의한 즉흥적인 공간구성과 불확실한 표현의 회화적 표현의 예술 행위에 심취하였다가 다시 입체적 구조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현대미술사에서 피카소(Pablo Picasso), 재스퍼 존스(Jasper Johns), 스텔라(Frank Stella) 등도 평면 회화에서 출발하여 입체, 설치 작품으로 발전한 좋은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김경애의 경우, 드로잉은 이미지를 그렸다면 새로운 입체작품들은 조각이나 주조가 아닌 ‘구성적 방법’을 취하고 있다. 현대미술에서 입체적 구성주의 작가의 대표적인 예로는 러시아 출신 나움 가보(Naum Gabo)를 들 수 있다. 가보는 입체파의 영향을 받아 구성주의 작품으로 발전시켰는데 플라스틱과 같이 투명한 재료와 돌, 나무 조각의 재료를 다양하게 사용하면서 재료의 형태와 질감을 강조함으로써 추상주의적 미술의 창조에 초점을 두었다. 가보는 자신의 기하학적 형태의 조각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조각’이나 ‘주조(鑄造)’가 아닌 ‘구성’을 택하고 있다. 가보는 구성을 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참신한 방법을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각의 표현과 ‘내 안의 생명’과 ‘자연의 힘’에 대한 통찰력을 찾기 위하여 새로운 구성적 이미지를 추구하였다.” 이 말에서 볼 수 있듯이 가보는 그 당시 자연과학의 발전에 따라 자연의 질서의 지각에 심오하게 영향을 주고 있음을 누구보다 절실히 깨닫고, 고정관념을 허물고, 새로운 현대미술을 위한 상상력을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하고자 하였음을 볼 수 있다. 새로운 실재들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새로운 모드를 탐색하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 등장한 네덜란드의 ‘데 스틸’과 독일의 ‘바우하우스’ 그리고 프랑스의 ‘추상 창조’ 운동을 통하여 그 시대의 조합된 의식의 표현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고 현대의 진실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되었다. 필자가 김경애 작가의 작품을 주목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본래 조각가이었지만 예술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갖기 위한 자신의 시간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원래 조각은 존재론적 기능을 지니고 있는데 가보의 생각처럼, 김경애의 작품은 새로운 현대미술을 위한 상상력을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하고자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예술작품은 시대의 변화에 심오한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초의 작가들은 엄청나게 변화된 세계에 적합한 시각적 언어를 고안하고 제시하였다면, 폐허 위에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내는 것은 뒤이어 등장한 가보 같은 작가들의 몫이었다. 가보의 작품은 그 당시의 과학과 결합되어 있지만, 결코 과학적 원리를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했듯이 지금도 4차 산업과 디지털, 스마트 영상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현대과학은 예술가들에게 자연 질서의 지각에 심오하게 영향을 주고 있다. 그렇지만 예술가는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이 단지 자신의 상상력을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하고 새로운 모드를 제시하면 된다, 20세기 초, 칸딘스키는 “원자의 해체는 나에게는 전 세계의 해체와 같이 나의 시각적 모든 대상을 해체하게 되었다.”고 진술하였다. 그 말은 급속히 변화하는 새로운 세계가 오게 되고, 예술과 과학의 결합이 불가피하게 될망정 작가는 굳이 과학적인 원리를 설명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이번 개인전에 출품하고 있는 작품들은 드로잉과는 상반된 형태의 입체적 구성 시리즈로 되었다. 전시 주제는 “삶의 변주”라고 되어있어서 작품 이미지와 동떨어진 주제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현대미술에서는 작품의 개념(concept)과 시각 이미지(visual image) 꼭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김경애의 신작들은 부피를 갖지 않은 구조물들이 평면(ground)으로부터 이탈(또는 분리)되어 새로운 조합으로 구성돼 있다. 나는 이번 작품에서 그의 다시 한번 발전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얼핏 그의 작품은 20세기 초기하학적 구성주의 미술이 추구하던 미래주의 미술과 타틀린(Vladimir Tattlin)의 작품을 연상하게 된다. 이 당시 미학은 일체 외계(外界)의 대상에 대한 재현을 거부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환원된 조형 요소의 조합으로만 작품이 이루어짐을 볼 수 있다. 비록 김경애의 작품의 주제가 “삶의 변주”라 하였듯이 매우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데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그의 작품은 표현 방법에 있어서는 본질적인 조형 요소를 중시하고 불필요한 장식을 부정하는 방향에서 전개되고 있다. 본래 예술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 속에 있는 허상을 끄집어내어 새로운 이미지로 만들어 내기도 하고, 철학적 이치와 개념을 지닌 ‘생명’을 불어넣어 탄생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경애는 나움 가보가 그러했듯이 새로운 시각의 표현을 위하여 ‘내 안의 생명’과 ‘자연의 힘’에 대한 인식을 통하여 회화도 조각도 아닌 질량이나 볼륨감이 없는 ‘특수한 표면(Specific surface)’으로서의 ‘오브제(Object)’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번 전시 작품 “삶의 변주” 시리즈는 전통적 ‘표상 방식(mode of representation)’을 포기하고 회화 고유의 평면성의 해체를 통하여 ‘물질적 가치(material values)’를 발견하고자 함에 있지 않나 유추해보면서 그의 작품의 순결성과 잠재적 가능성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