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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존재의 근원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과 지적 탐색  윤 진 섭 (미술평론가) Ⅰ.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김재관(1947- )이 차지하는 위상은 ‘기하학적 추상의 견고한 보루’ 내지는 ‘실천자’라는 말로 묘사할 수 있다. 1967년에 화단에 진출하여 올해로 쉰 네 해째를 맞이하는 그의 경력은 그 자체가 한국 기하학적 추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까닭은 그가 맨 처음 기하학적 추상을 시도한 1967년 무렵을 전후하여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본격적인 기하학적 추상이 출범하였으며, 기하학적 추상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몇몇 작가들 대부분이 후기의 작업 과정에서 기하학적 추상을 벗어났으나 유독 그만은 지금도 계속 이 경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의 일관성은 결과적으로 김재관을 한국 기하학적 추상의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기하학적 추상’의 의미는 본질주의적인 입장을 가리킨다.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통틀어볼 때, 유영국(1916-2002) 류의 자연에서 추출된 기하학적 요소나 경향이 아니라, 순수한 기하학적 도형과 원리에 바탕을 둔 추상 회화를 김재관이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적 비례와 조화 등 순수 직관에 의한 기하학적 원리에 입각한 김재관의 조형세계는 따라서 감성보다는 이성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눈에 보이는 자연 현상보다는 그 밑에 가라앉아 있는 근원적인 원리를 탐구하여 이를 조형화하고자 한다. 그런 까닭에 자연의 궁극적 원리로서의 ‘그리드(grid)’는 김재관 회화의 기저를 이루는 근본원리로 일찍이 자리 잡았던 것이다.  작가로서 김재관이 주목돼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 현대추상회화의 맥락에서 볼 때, 대다수의 작가들이 지나치게 추상표현주의적 내지는 서정적 추상, 색면추상 등등의 화풍에 경도된 상황에서도 꿋꿋이 기하학적 화풍을 견지하며 이의 세계를 가꾸어 왔다는 사실에 있다. 특히 1970년대 중반 이후 단색화를 중심으로 한 순수 추상회화의 일방적 우세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세계를 천착한 점은 오늘날 그를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대표작가로 우뚝 서게 한 요인이다.  사실 작가에게 있어서 일관성은 매우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일관되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천착해 들어간다고 하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문제 추구형의 작가라 할 수 있는바, 문제작가로서의 김재관은 초지일관되게 기하학적 추상 세계의 구축을 위해 반세기 동안 몰입하였으며, 그에 상응하는 업적을 쌓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미술계의 평가는 아직 합당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거니와,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보다 공적인 자리에서 거론되어야 마땅하리라 본다. Ⅱ.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기하학적 추상의 본격적인 출범은 1967년 무렵으로 하종현의 <도시계획백서>(1967)가 그 효시이다. 이 시기는 제3공화국 정부가 주도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여파로 인해 산업의 부흥이 이루어졌으며, 도시화가 진척되었다. 기하학적 추상은 아파트와 고층빌딩으로 대변되는 도시 미관에 걸맞은 회화적 양식이었기 때문에 이 무렵 작가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다. 김재관 역시 학부시절에 하종현의 <도시계획백서>를 보고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김재관의 최초의 기하학적 작품인 <추상 67-1>(60.6×50.0cm, 캔버스에 유채, 1967)은 건물의 위에서 아래를 부감한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청색을 주조로 한 이 그림은 직육면체, 삼각형, 원 등 기하학적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선보다는 면에 의한 화면 분할이 이루어진 것이 특징인 바, 이는 이후 작업의 전개에 있어서 면이 주가 되고 선이 종속되는 특유의 회화적 구조의 시초가 된다.  김재관의 50년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관류하는 요체는 이성적이며, 주지적인 정신의 작용이다. 그는 시각적으로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원리에 입각하여 언제나 화면을 통어(通御, control)한다. 이 화면 통어의 원리가 원근법으로 수렴돼 나타난 것은 서구의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서인데, 원근법은 세계를 향해 팽창해 나가기 시작한 서구 제국주의의 지배 원리이기도 했다.  김재관 회화의 요체를 이루는 그리드 역시 세계를 향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는 점에서는 원근법과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에서 시작해서 70년대의 솔 르윗(Sol LeWitt 1928-2007)에 이르러 정점에 달하는 회화에서의 그리드는 원근법과 함께 서구 모더니티(modernity : 근대성)를 추동시킨 대표적인 시각적 지배 원리라고 할 수 있다.  60년대 후반에 시작해서 70년대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김재관의 기하학적 추상은 여러 단계의 실험과정을 거쳤다. 즉, 70년대의 <관계> 연작이 보여주는 사각형과 서체적 필획(stroke)과의 ‘관계’, 80년대에 이루어지는 그리드 구조의 도입과 서체적 필획과의 ‘관계’, 90년대에 들어서 이루어진 변형 캔버스의 도입과 이로 인한 환영(illusion)과 실재 사이의 길항(拮抗) 관계에 대한 시각적 실험, 그리고 2천 년대 이후에 다양하게 시도된 평면과 입방체 사이의 시각적, 형태적 실험과 오브제와 설치를 통한 방법적 실험 등으로 요약된다. 이처럼 무려 반세기에 걸친 김재관의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작품의 내용보다는 ‘새로운 형식’에 대한 창안 의지라고 할 수 있다. Ⅲ. 90년대 중반에 홍익대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가일층 깊어진 그리드에 대한 연구는 김재관의 기하학적 추상세계를 이론적으로 확고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 시기에 김재관은 변형 캔버스를 둘러싼 시각적 트릭의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하고 실제로 작품을 통해 많은 실험을 했다. 그러한 실험은 “사각형 중 한 쌍의 대변이 평행인” 사다리꼴의 두꺼운 변형 캔버스를 통해 주로 이루어졌다. 김재관은 사다리꼴에서 세로 변은 평행이나 가로 변이 원근법의 원리를 좇을 때 돌출돼 보이는 시각적 트릭 현상에 주목했다. 이 시기의 명제에서 ‘관계(Relationship)’에 붙은 ‘허구(Fiction)’란 부제는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 붙인 게 아닌가 짐작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김재관이 기울이는 자신의 미술에 대한 사유이다. 작업의 초기부터 그는 한국의 전통 격자창이 지닌 구조에 주목했다. 그와 관련해서 그는 작품 제작을 위해 한지를 도입했다. 70-80년대의 <관계> 연작에서 보이는, 리드미컬하게 반복된 청색 붓질을 뒤덮은 흰색의 옅은 계조(gradation) 효과는 전통 창호에 연원을 둔 것이다. 또한 80년대 후반에 들어서 김재관은 엄격한 그리드 띠에 오방색 터치를 가하는 작업을 펼쳤는데, 이는 90년대 중반에 시도한 청, 홍색과 음양의 원리에 뿌리를 둔 두꺼운 변형 캔버스를 둘러싼 다양한 실험으로 연결된다. 병풍처럼 보이는 변형 캔버스의 시각적 환영(illusion)에 관한 실험은 그중에서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러한 일련의 형식적 실험은 김재관이 다분히 서구를 의식한 것으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모더니즘의 문맥에서 볼 때, 변형 캔버스 자체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로 대변되는 서구의 회화적 관례이기 때문에, 그것이 김재관의 새로운 고안물(novelty)이 될 수는 없을 터이고 그 역시 그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화적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그가 모색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인가? Ⅳ. 언어적인 측면에서 볼 때, ‘관계’는 단독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늘 상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사이(between)’의 구조를 지닌다. 선과 선 사이, 면과 면 사이, 입체와 입체 사이라고 하는 용례에서 보듯이 김재관의 수많은 작품들은 구조적으로 볼 때 결국 ‘사이’의 파생물들이다. 동양의 관점에서 보면,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있는 ‘천지인(天地人)’의 관계인 것이다. 따라서 김재관의 ‘관계’는 사람에 대한 유비(analogy)로서의 그리드, 즉 하늘과 땅(상하)을 잇고 좌와 우를 매개하는 매개자로서의 중간 항(+)의 위상을 이름이다. 동양의 세계관을 표상하는 이러한 방식의 구조는 일신론적인 서양의 기독교적 세계관이 표상하는 것과 판이하다. 주지하듯이 서양의 세계관은 중세 때까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형성된 수직적 체계(주종관계)에서 르네상스 시기에 오면 인간의 시선이 표상하는 수평적 체계로 대체되는데, 원근법은 이의 대표적인 표상체계이다. ‘시각의 합리화’를 의미하는 원근법은 지리상의 발견이 의미하는 것처럼 세계를 지배하는(control) 원리인바, 종래는 서구 제국주의를 탄생시키는 중심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김재관의 그리드를 통한 원근법의 부정은 주역의 체계를 빌어 동양적 세계관의 입장에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주역에서 기본이 되는 양효(-)와 음효(--)의 다양한 조합은 이 두 효들의 수평과 수직 이동으로 이루어진다. 주역의 64괘는 양효와 음효의 다양한 결합의 산물이며, 근본적으로 주역은 양효와 음효 사이의 관계를 묻는 관계의 철학이다. 그런데 자연의 세계나 인간의 세계나 간에 관계는 일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늘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의 관점에서 우주와 자연, 인간을 파악하는 철학이 바로 주역인 것이다. 주역의 영어명이 ‘The Book of Changes’인 점도 의미심장하다.  김재관의 <Persnalities>, <Myth of Cube>, <Cube-Secretness>, <Deviation from Grid>, <Distorted Cube>, <시각의 차이> 등등 2천 년대 이후에 실험한 김재관의 작업들은 앞에서 본 것처럼 서구의 합리적 세계관의 산물인 원근법과 그리드의 체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새로운 형식을 창안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 대한 해결의 모색이었다.  내가 보기에 김재관의 작품세계는 궁극적으로 ‘힘과 지배(power and control)’로 대변되는 서구의 제국주의적 세계관을 위한 표상체계에서 벗어나 동양의 주역이 의미하는 것처럼 조화와 상생의 세계관의 입장에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충분한 여지가 있다. 김재관이 앞에서 열거한 연작을 통해 평면성을 새롭게 해석하고, 사각형과 입방체의 다양한 변형과 조합을 통해 무수한 경우의 수를 조형실험을 통해 제시한 목적은 작품의 낱낱의 내용보다는 전체를 관류하는 새로운 형식의 창안 모색에 두어진다. 지난 2천 년대 이후 그가 창출한 새로운 형식들이 세계 미술계에서 인정받기까지에는 좀 더 오랜 검증의 기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 요한 호이징가(Johan Huizinga 1872-1945)가 언급한 것처럼 2천 년대 이후 김재관의 작품들에는 ‘놀이성(Homo Ludens)’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퍼즐을 풀듯이 수많은 경우의 수를 담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딱딱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비의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우주 발생(Big Bang) 당시의 신비스러운 상태로 환원하기라도 하듯 존재의 근원을 향한 김재관의 지적 탐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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